음악회를 할 때마다 우리를 시샘하는 세력이 있나보다. 3월에는 갑작스레 눈이 오더니 오늘은 또 비가 내린다. 그것도 꽤나 많이 내려 점심이 지나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50여 명의 객석을 준비하며 이만큼이나 찰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시간이 가까울수록 몰려드는 인원을 감당할 수가 없어 자리를 만드는 수고를 해야 했다. 음악회 두 번째에 벌써 자리를 잡은 느낌이 든다.
연주자들(바이올리니스트 이아라, 첼리스트 김경아, 플루티스트 이지혜, 클라리네티스트 양송희, 피아니스트 이보라)이 들어오고 주희현 목사의 사회와 해설로 음악회가 시작된다. 음악회의 주제를 보여주는 제목 ‘사순, 사랑을 끌어안는 계절’이 참 인상적이다. 예수의 사랑을 떠올리는 사순절, 그 절기에 하는 음악회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 제목인가!
첫 번째 곡은 엘가의 ‘사랑의 인사’.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엘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엘리스’라는 여자를 만났다. 귀족인 엘리스는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엘가의 아내가 된다. 그 엘리스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엘가는 큰 성공을 거둔다. ‘사랑의 인사’는 엘가가 약혼 선물로 자신의 연인인 엘리스에게 헌정한 곡이다.
첼로의 풍부함과 따뜻함과 그윽함이 느껴진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에 사랑의 키스를 날리고 싶은 아침 인사와 가슴 설레는 짜릿함, 또 그런 일상 속의 행복함과 황홀함이 녹아 있는 듯하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과 그윽함이 첼로라는 악기에 실려 사랑의 도취되어 속삭이는 목소리로 인사하는듯 하다.
첫 곡과 두 번째 곡 사이의 이음매는 이수동의 ‘동행’이라는 시다.
꽃 같은 그대,
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
그대는 꽃이라서
10년이면 10번 변하겠지만
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 남기고 말겠다.
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테니
길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
그대의 꽃 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나무는 든든히 서 있고, 꽃은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나무는 하나님이 되고 하나님의 동행이 있었기에 우리가 평화롭지 못한 상황에도 살아갈 수 있다.
두 번째 곡은 강은경이 편곡한 피아노와 바이올린, 클라리넷이 협연하는 찬송가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이다. ‘친구의 동행이 있기에 우리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제목과 클라리네티스트의 파란 드레스는 묘한 어울림으로 마치 푸른 강물을 연상하게 한다.
후렴부터 시작된 연주는 깊이 있는 떨림의 바이올린에 이어 호소력 짙은 클라리넷, 다시 폐부를 파고드는 바이올린 연주로 이어진다. 눈물 한 방울이 가슴으로 파고든다. 2절의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주고받는 선율도 좋다. 3절의 변주는 가슴이 아린다. 평화가 오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듯 선율은 고통과 상실을 말한다. 그러나 평화를 얻고 난 뒤에는 기쁨이 넘친다. 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이 평화의 하모니를 주고받는다.
세 번째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더힘, 더송(The Hymn, The Song)”은 찬양과 노래로 힘내라는 의미라고 한다. 힘 안 나는 이 시대, 서로에게 위안과 힘이 되는 음악회가 되기를 바라는 제목이란다. 연주를 들은 모두에게 충분히 그런 음악회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세 번째 곡은 플루트 솔로로 ‘쇼팽 변주곡’이 연주되었다. 변주는 주제를 반복하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사람의 관계도 똑같다. 모두가 똑같기만 해서는 안 된다. 같은 일상이지만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고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나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묵상이 필요하다. 맑음과 동시에 나를 깎아내는 은밀한 아픔이 동반되어야 한다.
쇼팽 변주곡 연주는 주제가 반복되는가 하면 조금 다른 변화를 보인다. 그래서 느긋한 여유로움이 있는가 하면 상큼함과 발랄함이 있다.
사랑을 하다 보면 만나는 자리가 기도의 자리이다. 사랑이 어려울수록 기도의 자리로 나가게 된다. 기도는 뭔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 안의 세계가 넓어지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 내가 변하는 것이다.
네 번째 연주곡은 김신웅 편곡의 ‘내 기도하는 그 시간’.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로 연주된다. 도입은 어두운 순간, 좌절과 고통이 있을 때 어떤 자리로 나아갈 것인가 질문한다. 첼로가 기도가 정답이라고 말한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선율을 주고받으며 휴지 상태를 유지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나서며 이어 셋이 모두 더 힘차게 힘을 합하여 말한다. ‘기도하는 그 순간이 가장 귀하다’고.
못 견디는 상황이 있으면 접어가면 어떨까? 사랑으로 승화하는 과정에 반드시 접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접으셨을까? 사랑의 관계에서 가장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은 같은 미래를 바라보며 꿈을 꾸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단 접을 것을 접을 때 일어난다.
시각 장애 스키선수와 가이드 러너(영상)은 같은 꿈을 꾼다. 그들은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있었고 그래서 같은 꿈을 꿀 수 있었다. 같은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같이 생활하고 서로를 전적으로 믿는다. 예측불허한 인생에서 우리에게도 가이드 러너가 필요하다. 신앙생활의 원리는 가이드 러너인 예수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다섯 번째 연주곡은 박유민 편곡, 첼로와 클라리넷, 피아노로 연주하는 ‘만왕의 왕’이다. 클라리넷이 선두에 나서고 주선율을 맡는다. 첼로와 피아노에 이어 클라리넷이 웅장하게 등장해 최고 장엄한 그 이가 예수시라고 선포한다. 약간의 변주가 더해져 밝은 빛에서 활약하며 약동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가 고초당한 순간이 약하게 표현되다 무겁게 상승한다. 이제 믿음으로 나아갈때 지순한 흐름이 된다. 힘찬 약진과 더불어 때때로 가슴 깊은 흐느낌이 있다. 주님의 사랑에 겨워 가슴으로 흐느낀다.
여섯 번째 연주곡인 차이코프스키의 ‘멜로디’는 한 평론가에 의해 너무 러시아 냄새가 난다고 혹평을 받았다. 세상에서 감출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사랑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조국과 그에 대한 사랑이 음악에서 감추어지지 않았듯이 신앙인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냄새가 나야 한다.
강은경이 편곡한 ‘멜로디’는 처음에는 클라리넷이 등장하며, 이어 첼로와 바이올린이, 마지막에 플루트까지 더해지며 다 같이 기쁨의 만찬에 들어간다. 바이올린이 기쁨에 취하고 플루트는 더 격렬하게 표현한다. 숨이 더 빨라져 이제는 숨이 멎을 것 같다. 급히 몰아가는 분위기는 흡사 치마가 휙휙 돌아가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된다. 그러다가 플루트가 등장하며 마치 새가 노래하는 듯하다. 때때로 침묵과도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만 다시 찾아온 일상 속으로 기쁨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 격한 표현으로 바이올린이 클라리넷과 플루트와 주고받으며 마침내 가녀린 플루트의 소리로 끝난다.
비가 와서 젖은 창밖 풍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회는 막바지에 절정을 맞는다. 쇄도하는 앵콜 요청에 마지막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가 연주된다. 모두가 무도회장에 와 있는 사람들처럼 열광한다. 비록 눈을 마주한 연인들은 아니지만 어느 덧 떨리는 몸짓을 같이 나누는 듯 눈빛은 흥분이 도가니가 된다.
강진국 목사(청주 남부은샘교회 담임)
